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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30. 14:47 좋은 책/테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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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에는 청춘은 000, 000까 청춘이다 등 청춘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피곤한 청춘들이 그런 책들을 읽으며 위로를 얻는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지요. 글쎄요....청춘, 그렇게 간단히 정의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심지어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는 것은 너무 부정적인 시각이겠죠? 죄송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어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기성세대로 넘어가기 전, 우리는 정말 힘든 과정을 겪습니다. 너무나 견고한 기성 세대의 논리가 우리를 숨막히게 압박해오지요. 저항하다 만신창이가 되거나 기죽은 채 그 논리를 받아들이거나... 청춘의 선택은 많은 경우 애처롭습니다. 그런 기억없으시다구요?...그렇다면 당신은 청춘이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당신은 애늙은이처럼 세상이치 다 안다는 듯 철저하게 그들의 논리에 맞추어 살아온 건 아닐까요? 

1.울분- 필립 로스

 

필립 로스는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들을 꾸준히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2008년 최근작인 <울분>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미국사회가 젊은이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요.

1950년 하면 우리에게는 6.25전쟁이 떠오릅니다. 이 소설의 첫문장에 이 비극적인 전쟁이 언급되지요. 한국땅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커스의 운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마커스는 그 시기에 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목표에 열중하지요. 하지만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는 인간들은 그에게 방해만 됩니다. 그는 방을 옮기지요. 그런 일이 반복되자 급기야 학장이 그를 불러 훈계를 합니다. 너는 왜 적응하지 않고 계속 옮겨다니느냐고 말이지요...

마커스를 둘러싼 인물들,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학장, 친구들과 여자친구는 마지막 마커스의 운명에 저마다 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우리 인생이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처음부터 정육점, 도살장이라는 피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이 사회에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청춘의 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청춘을 고분고분 길들이기에 급급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모두 실패합니다. 단 한 사람만 빼고요. 살아남은 그 청춘이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것은 왜일까요?

"나는 어떤 똥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소설 앞머리에 인용된 이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2. 부서진 사월 - 이스마일 카다레

 

알바니아 출생의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자신의 고국인 알바니아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나라나 지방 따위의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들은 어딘가 신비롭고 은은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중 최고가 <부서진 사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 그조르그는 형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하고, 관습법의 준수여부를 감독해오고 있는 오르크라 불리는 성(城)을 찾아가는 여정에 오릅니다. 그 성의 관리자에게 자신이 죽인 자의 핏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지요.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기댈 곳 없는 그의 마음만큼이나 황량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알바니아 북부 고원지대의 관습법인 '카눈'에 따르는 것입니다. 카눈에 의하면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만약 죽은 형을 위해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가문의 망신이요, 그조르그 또한 명예롭게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며 살인을 강요했지요. 그조르그는 속으론 웃음이 날 정도로 그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저항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형의 복수를 위해 한 사람을 죽인다면, 그에게 죽임을 당한 자의 가족들은 또 복수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조르그를 향해서 말이지요. 이렇듯 뻔히 파멸이 보이는 길을 그조르그는 회의에 찬 상태로 묵묵히 걸어갑니다. 이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청년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거든요. 작가의 아련하고 차분한 글 속에 들어있는 문제의식은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비단 신화처럼 보이는 소설 속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모든 국가에서 이렇듯 숨막히는 논리를 도덕이나 예의 혹은 관습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씌워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자, 우리가 사람들을 재단하는 잣대를 한번 꼼꼼하게 살펴봅시다. 아직 젊은 당신, 혹시 온갖 선입견과 편견에 절어 있지는 않은가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당신에게 강요되는 것은 물론이고 금지된 것들은 어떤가요? 그것에 대해 왜 금지되어 있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유해한 것인지 한번 따져본 적 있나요?

 

 

3.작은 것들의 신 - 아룬다티 로이

 

1997년에 부커상을 수상한 인도출신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입니다. 부커상은 영국 최고 문학상이라 할 수 있지요. 저는 부커상을 받은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많은데요,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그 이유를 알겠네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 작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어로 쓴 작품들이 꽤 많이 부커상을 수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도라는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나라입니다. 반면 카스트제도 라는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이 여전히 건재한 곳이지요. 이 소설의 배경은 작가가 성장한 곳이라고 하는데요,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도 했던 지역으로, 여러 종교들과 공산주의가 뒤섞여 종교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쌍둥이의 엄마 아무는 이혼 후 친정집에서 갖은 구박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실패한 결혼은 나름 사회의 관습을 깨고 감행한 것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죠. 그들의 집에서 하인으로 살아온 불가촉천민 벨루타는 좋은 사람으로 어린 쌍둥이 남매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와 벨루타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지내왔지만 그동안은 신분의 차이를 의식하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들의 시선이 강렬하게 마주친 날, 그날 이후 그들의 관계는 달라지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밀이어야 합니다. 함께 있는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아주 작은 것들만을 탐닉하지요.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비극적입니다. 어린 쌍둥이 남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겨서 그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게다가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원칙이 조금이라도 공격을 당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린 쌍둥이 남매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 기어기 벨루타와 아무를......

자, 우리에게 이것이 옳다, 저것은 틀렸다고 강요하는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소설 속에 그려진 것처럼 그들은 서양, 강대국이라면 감격하고 황송해하며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박수를 쳐대는 흉한 몰골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이라는 것이 오직 자신들의 안위를 유지하고 허위를 가리는 역할만을 할 뿐인 것이 아닐까요?

진정한 전통은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단단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분명 전통이라는 관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정말 훌륭하고 진정한 유산들은 기득권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가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분들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요. 본인이 진정 보전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4.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김연수 작가는 진지한 사색을 하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김연수 작가의 어떤 책은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요즘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 시위를 많이 하지요. 저도 얼마전에 대학등록금 액수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보면 이 문제는 단순히 등록금을 낮추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학벌지상주의에 물든 우리의 모습, 돈만 내면 캠퍼스 내 건물에 이름 하나씩 달수 있는 눈살 찌푸려지는 현실, 온갖 상업주의가 대학 구내로 침범한 상황...이미 한국의 대학은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지요.

90년대 초만 해도 소위 운동권이라는 불리는 대학생들은 취직을 위해 아둥바둥하는 지금의 대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가치를 추구했었지요. 그리고 그때가 거의 나의 삶보다 더 큰 거대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투쟁하는 마지막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 소설은 딱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나 역사, 통일 따위를 거론하는 것이 한물 간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는 시기지요. 주인공 나는 그 간극에 갇혀버린 신세가 됩니다. 나는 방북 학생 예비대표로 베를린으로 가게 되지요, 하지만 한국 내에서 변화를 맞이하는 운동권 지도부는 그런 나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먼 타국 땅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허풍을 떤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나는 독일에서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과거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학도병으로 이곳까지 끌려왔었지요...그 밖에도 나는 많은 인물들과 마주치며 그곳까지 흘러들어온 온갖 사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특정한 조건에 처하게 되면 스스로 자살을 하도록 프로그램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듣지요. 그는 한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숨은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시대를 거대담론이 사라진 시대라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무관심 탓만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보니 먹고사는 일에 신경쓰기에 급급한 것이니까요. 혹은 우리의 정신을 온통 물질적인 것(차, 아파트, 신상품)에 묶어놓고 있는 세력들의 농간이기도 하구요.

지금 우리는 그들의 논리에 너무 고분고분 길들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그것(패션, 신발, 성형, 인테리어 등등의 유행과 명문대나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등 남들을 따라가지 못할까 오늘도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이 정말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입니까? 정말 당신은 한 인간의 인생이 그정도로 끝나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좀 무거웠지요? 쓸데없이 격앙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북하셨다면 또 한번 사과!!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 쫑북세력 아닙니다.  (대한민국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뭐 아무한테나 다 종북이라고 하대요...종북이라는 말 자체도 어처구니 없지만...빨갱이란 단어보다 재미도 없고 따분해요....그냥 알바들이 하는 짓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알라딘 T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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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파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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